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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누가 100조 원짜리 AI 컴퓨터를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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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o] 누가 100조 원짜리 AI 컴퓨터를 만드나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가장 빠른 자는 122일 만에 슈퍼컴퓨터를 켠 xAI 가장 크게 짓는 자는 5기가와트 하이페리온의 메타 가장 많은 돈을 모은 자는 스타게이트 연합 반전은 경쟁사끼리 서로의 컴퓨터를 빌려 쓴다는 것 멤피스 폐공장에서 시작된 경쟁 2024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옛 일렉트로룩스 가전 공장에 엔비디아 그래픽칩 약 10만 개가 들어갔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xAI가 만든 슈퍼컴퓨터 콜로서스였습니다. 공사부터 가동까지 걸린 시간은 단 122일 이었습니다. 이 시설들은 크기를 전기 사용량으로 잽니다. 1기가와트는 대형 원전 한 기가 만드는 전기와 비슷한 규모입니다. 다만 여기에 나오는 숫자는 기업 발표와 보도를 바탕으로 한 계획이 섞여 있어, 실제 완공 규모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장 빠른 자, xAI 처음 연결된 전력망은 약 8메가와트에 불과했습니다. xAI는 이동식 가스 터빈과 테슬라 메가팩으로 부족한 전기를 메웠습니다. 2025년 시작된 콜로서스 2는 첫 대규모 칩 묶음을 약 91일 만에 켰고, 2026년 중반 멤피스 일대 시설은 약 1기가와트 규모에 다가섰습니다. 속도에는 대가도 따랐습니다. 2026년 4월 NAACP는 허가 없이 발전소를 돌렸다며 소송을 냈고, 회사는 주 정부와 합의해 2027년 중반 까지 임시 터빈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가장 크게 짓는 자, 메타 루이지애나주 리치랜드 패리시에서 2024년 12월 착공한 하이페리온은 처음 예상 비용이 약 100억 달러였습니다. 2025년 10월 블루 아울 캐피털과 합작법인을 만들 때는 270억 달러, 2026년 7월에는 5기가와트 규모에 500억 달러 이상 으로 커졌습니다. 시점 비용·규모 착공 당시 약 100억 달러 2025년 10월 270억 달러, 2GW 계획 2026년 7월 500억 달러 이상, 5GW 목표 2030년 2GW, 2032년 5GW 루이지애나주는 2029년 전에 짓는 데이터센터에 20년간 판매세를 면제하는...

[Why] 왜 개발자들은 엔비디아에 갇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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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개발자들은 엔비디아에 갇혔는가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더 싼 칩으로 바꾸려던 팀이 몇 주 만에 돌아옵니다. 업계에서 자주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이유는 칩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엔비디아의 해자는 칩보다 쿠다입니다. 2006년, 손해를 감수한 도박이 시작이었습니다. 2012년 딥러닝 폭발이 판을 굳혔습니다. 코드·사람·연결, 세 겹의 벽이 있습니다. 1. 칩 회사의 진짜 상품은 소프트웨어 엔비디아는 업계 추정으로 AI 가속기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많게는 80% 이상으로 봅니다. 2024년 6월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넘었고, 2025년 10월에는 5조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그런데 경쟁사도 빠른 칩을 만듭니다. 차이를 만든 것은 쿠다(CUDA) 라는 개발 플랫폼입니다. 쿠다는 그래픽카드에 일반 계산을 시키는 도구입니다. 핵심은 엔비디아 칩에 맞춰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2. 2006년, 아무도 원하지 않던 도박 1993년 젠슨 황 등 세 엔지니어가 회사를 세웠습니다. 시작은 게임 그래픽 칩이었습니다. 그래픽 칩은 단순 계산 수천 개를 동시에 처리합니다. 연구자들은 이 힘을 과학에 쓰고 싶어 했습니다. 2006년 엔비디아는 쿠다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게임용 칩에까지 쿠다 지원을 넣었습니다. 당장 쓰는 사람도 없는 기능에 칩 면적과 비용을 쏟아부은 셈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와 겹쳐 주가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대학 강의와 무료 도구 배포는 계속됐습니다. 3. 2012년, 씨앗이 숲이 된 순간 토론토 대학의 알렉스넷은 GTX 580 두 장으로 훈련됐습니다. 이미지넷 대회에서 압도적으로 우승했습니다. 연도 사건 2006 쿠다 발표 2012 알렉스넷 우승 2014 cuDNN 공개 2016 파이토치 등장 2019 멜라녹스 인수 발표 연구자들은 엔비디아 카드로 몰렸습니다. 텐서플로와 파이토치도 처음부터 쿠다를 기본으로 지원했습니다. 이제 개발자는 쿠다를 몰라도 쿠다 위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4. 개발자를 붙잡는 세 겹의 벽 첫째는 코드...

[How] 제갈량은 어떻게 출사표로 조직을 묶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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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w] 제갈량은 어떻게 출사표로 조직을 묶었나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가장 약한 나라, 떠난 창업자, 갈라진 신하들. 이 조직을 하나로 묶은 것은 칼이 아니라 글 한 편이었습니다. 출사표는 227년 북벌 직전 황제에게 올린 글 위기 공유와 공정한 상벌 기준을 강조 맡길 인재를 이름으로 직접 지목 패배 뒤 스스로 강등하며 원칙을 지킴 1. 위기의 나라, 촉한 촉한은 위, 오와 천하를 나눈 세 나라 중 가장 작았습니다. 땅도, 인구도, 군사도 모두 부족했습니다. 222년, 유비는 이릉에서 오나라에 크게 패했습니다. 이듬해 그는 백제성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죽기 전 제갈량에게 뒷일을 맡겼습니다. 정사 삼국지에는 "그대의 재주는 조비의 열 배"라는 말이 남아 있습니다. 남겨진 조직은 단단하지 않았습니다. 형주 출신, 익주 토착 세력, 유장의 옛 신하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새 황제 유선은 아직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창업자가 떠난 조직 의 전형적인 위기였습니다. 제갈량은 225년 직접 남쪽 반란을 진정시켰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군량을 모으고 병사를 훈련했습니다. 2. 출사표는 어떤 글인가 출사표는 '군대를 내보내며 올리는 글'이라는 뜻입니다. 227년, 제갈량은 북벌을 앞두고 이 글을 황제에게 올렸습니다. 첫머리부터 솔직합니다. 그는 지금이 위급존망의 때 라고 적었습니다. 나라가 살지 망할지 갈리는 순간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황제에게 스스로를 낮추지 말고, 신하들의 바른말을 막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글의 대부분은 전쟁 계획이 아닙니다. 자신이 떠난 뒤 조정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당부입니다. 후대에는 이 글을 읽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는 말까지 전해집니다. 연도 사건 207년경 삼고초려 223년 유비 사망, 뒷일 부탁 225년 남중 평정 227년 출사표 상주 228년 가정 패배 234년 오장원에서 병사 3. 조직을 묶은 네 가지 장치 출사표에는 오늘날 리더십 원칙과 닮은 장치가 담겨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

[Why] 왜 탐험가들은 황금향 엘도라도를 쫓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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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탐험가들은 황금향 엘도라도를 쫓았나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황금 도시를 찾아 수천 명이 정글로 들어갔습니다.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전설은 도시가 아니라 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도라도의 원뜻은 황금 인간입니다. 뿌리는 무이스카의 호수 의식입니다. 잉카의 황금이 탐욕에 불을 붙였습니다. 호수 배수 시도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1. 엘도라도는 도시가 아니었다 스페인어 엘도라도는 황금을 입은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처음부터 황금 도시를 가리킨 말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콜롬비아 고원에는 무이스카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금을 화폐보다 신성한 재료로 여겼다고 전해집니다. 17세기 연대기 작가 로드리게스 프레일레는 한 의식을 기록했습니다. 새 지도자가 온몸에 금가루를 바르고 뗏목에 올랐다는 내용입니다. 뗏목이 호수 한가운데 이르면 금과 보석을 물속에 바쳤다. — 프레일레의 기록 요약 이 이야기는 전해 들은 증언을 정리한 것입니다. 다만 고고학 유물이 의식의 존재를 뒷받침합니다. 2. 잉카의 황금이 불을 붙였다 1532년 피사로는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았습니다. 황제는 몸값으로 방 하나를 금으로 채우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장면은 유럽 전역에 퍼졌습니다. 한 번의 원정으로 인생이 바뀐다 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원정은 대부분 사적 투자로 꾸려졌습니다. 빚을 갚으려면 금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왕실 허가와 사적 자본이 결합했습니다. 성공담이 과장되어 퍼졌습니다. 원주민 안내인의 말이 확대 해석됐습니다. 3. 원정대는 왜 무너졌나 1537년 케사다는 무이스카 땅에 도착했습니다. 금은 얻었지만 전설 속 끝없는 보물은 없었습니다. 1541년 곤살로 피사로는 동쪽 정글로 향했습니다. 계피와 황금의 땅을 찾는 원정이었습니다. 부하 오레야나 는 식량을 구하러 강을 따라갔다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는 결국 아마존강을 따라 대서양까지 내려갔습니다. 연도 원정 결과 1537 케사다 무이스카 정복 1541 곤살로 피...

[What]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무엇으로 견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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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무엇으로 견뎠는가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역병과 전쟁, 배신과 상실이 한꺼번에 덮친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무너지는 대신 밤마다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재위 19년 내내 역병과 전쟁이 이어졌다 전쟁터 막사에서 명상록을 그리스어로 썼다 반란 장군의 편지를 읽지 않고 태웠다고 전해진다 버팀의 도구는 매일의 자기 점검이었다 1. 철학을 사랑한 소년이 황제가 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 황위 계승자는 아니었습니다. 하드리아누스의 눈에 띄면서 길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젊은 그를 사로잡은 것은 권력보다 철학이었습니다. 스승 루스티쿠스는 그에게 에픽테토스의 강의록을 건넸다고 전해집니다. 161년, 그는 마흔 살에 황제가 됩니다. 그리고 곧 세상이 그를 시험하기 시작합니다. 2. 역병, 제국을 덮치다 165년 무렵, 동방 원정에서 돌아온 군대와 함께 역병이 퍼졌습니다. 오늘날 안토니누스 역병 이라 부르는 재앙입니다. 많은 학자가 천연두로 추정합니다. 사망자는 500만~1000만 명이라는 추정이 흔하지만 연구자마다 차이가 큽니다. 국고는 바닥났습니다. 황제는 세금을 올리는 대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트라야누스 광장에서 궁전 보물 경매 를 열었다고 전해집니다. 금잔과 의복, 황후의 보석까지 내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연도 사건 161년 황제 즉위 165년경 역병 확산 169년경 궁전 보물 경매 175년 카시우스 반란 180년 도나우 전선에서 사망 3. 도나우강 막사에서 쓴 일기 북쪽에서는 마르코만니족과 콰디족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황제는 노년의 대부분을 전선에서 보냈습니다. 그 막사에서 쓴 글이 명상록 입니다. 출판할 생각 없이, 그리스어로 자신에게 쓴 메모였습니다. 1권 끝에는 "그란누아 강가, 콰디족 사이에서"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2권은 카르눈툼에서 썼다고 적혀 있습니다. 너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

[Where] 인더스 문명의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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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더스 문명의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영상에서는 철길 밑 벽돌에서 시작해 마지막 발자국까지 따라갔습니다. 여기서는 영상에서 못다 한 숫자와 논쟁, 남은 수수께끼를 정리합니다. 도시는 왜 비었고,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다섯 장면으로 살펴봅니다. 전성기: 기원전 2600~1900년 무렵 쇠퇴: 수백 년에 걸친 점진적 탈도시화 유력 원인: 몬순 약화와 강 변화, 교역 감소 결론: 동쪽과 남쪽의 작은 마을로 흩어짐 미해결: 인더스 문자는 아직 해독 못 함 1. 철길 밑에서 깨어난 문명 1850년대 영국 기술자들은 라호르와 물탄을 잇는 철도를 놓았습니다. 이때 하라파 유적의 벽돌이 철로 밑 자갈 대용으로 쓰였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그 벽돌이 4천 년 넘은 유물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기차는 수십 년 동안 그 위를 달렸습니다. 정체가 밝혀진 건 1920년대입니다. 1921년 하라파, 1922년 모헨조다로 발굴이 이어졌고 1924년 존 마셜이 세상에 알렸습니다. 흙 아래에서 바둑판처럼 반듯한 거리가 드러났습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와 나란히 설 문명이 등장한 셈이었죠. 왕의 이름 하나 남기지 않은, 가장 조용한 고대 문명. 유적은 지금의 파키스탄과 인도 서북부에 넓게 퍼져 있습니다. 넓이는 약 100만 제곱킬로미터 로 추정됩니다. 인구 추정치는 연구자마다 크게 다르지만, 수백만 명 까지 보기도 합니다. 2. 숫자로 본 도시의 품격 인더스 도시의 핵심은 규격입니다. 벽돌은 대체로 1 대 2 대 4 비율을 따랐습니다. 저울추도 일정한 단위를 썼고, 집집마다 욕실과 덮인 하수도가 연결됐습니다. 항목 내용 전성기 기원전 2600~1900년 알려진 유적 1,000곳 이상 대욕장 크기 약 12m × 7m 벽돌 비율 1 : 2 : 4 문자 기호 수백 종, 미해독 모헨조다로의 대욕장은 바닥과 벽을 역청으로 방수 처리했습니다. 의식용 정화 공간이었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인장에는 소나 유니콘처럼 보이는 동물과 짧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한 문장...

[What] 오크섬 지하 구덩이엔 무엇이 묻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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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섬 지하 구덩이엔 무엇이 묻혀 있는가?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230년 동안 사람들이 파고 또 팠습니다. 그런데 아직 아무도 그 바닥을 보지 못했습니다. 1795년 한 소년이 움푹 꺼진 땅을 발견했습니다. 구덩이는 파 들어갈 때마다 바닷물에 잠겼습니다. 1909년 루스벨트도 탐사에 투자했습니다. 지금까지 6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기록됩니다. 보물의 존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1. 1795년, 오크나무 아래의 구덩이 오크섬은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마혼베이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면적은 약 57헥타르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1795년 소년 대니얼 맥기니스가 섬에서 움푹 꺼진 땅을 봤습니다. 그 위의 오크나무 가지에는 도르래 자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와 친구들이 땅을 파자 약 3미터마다 통나무 판 이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이 발견담은 수십 년 뒤에 기록된 것입니다. "일곱 명이 죽어야 보물이 나온다." 섬에 전해지는 말이지만 출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2. 바닷물이 지키는 구덩이 1803년 무렵 온슬로 회사가 본격적인 굴착에 나섰습니다. 약 27미터(90피트) 깊이에서 기호가 새겨진 돌이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구덩이는 바닷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후 거의 모든 탐사대가 같은 침수 에 막혔습니다. 일부는 누군가 일부러 바다와 이어지는 홍수 터널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지질학자들은 석고 지대에 생긴 자연 동굴과 지하수로가 원인이라고 봅니다. 연도 사건 1795 구덩이 발견담 1803 온슬로 회사 굴착 1849 트루로 회사 시추 1909 루스벨트 투자 1965 레스톨 일가 사고 1969 10-X 시추공 3. 대통령도 꿈꾼 보물 1909년 젊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가 올드 골드 샐비지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그는 훗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섬 소식을 챙겼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오크섬은 비극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1965년 8월 탐사자 로버트 레스톨과 아들 등 4명이 갱도 안의 가스로 목숨을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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