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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제갈량은 어떻게 출사표로 조직을 묶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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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w] 제갈량은 어떻게 출사표로 조직을 묶었나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가장 약한 나라, 떠난 창업자, 갈라진 신하들. 이 조직을 하나로 묶은 것은 칼이 아니라 글 한 편이었습니다. 출사표는 227년 북벌 직전 황제에게 올린 글 위기 공유와 공정한 상벌 기준을 강조 맡길 인재를 이름으로 직접 지목 패배 뒤 스스로 강등하며 원칙을 지킴 1. 위기의 나라, 촉한 촉한은 위, 오와 천하를 나눈 세 나라 중 가장 작았습니다. 땅도, 인구도, 군사도 모두 부족했습니다. 222년, 유비는 이릉에서 오나라에 크게 패했습니다. 이듬해 그는 백제성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죽기 전 제갈량에게 뒷일을 맡겼습니다. 정사 삼국지에는 "그대의 재주는 조비의 열 배"라는 말이 남아 있습니다. 남겨진 조직은 단단하지 않았습니다. 형주 출신, 익주 토착 세력, 유장의 옛 신하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새 황제 유선은 아직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창업자가 떠난 조직 의 전형적인 위기였습니다. 제갈량은 225년 직접 남쪽 반란을 진정시켰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군량을 모으고 병사를 훈련했습니다. 2. 출사표는 어떤 글인가 출사표는 '군대를 내보내며 올리는 글'이라는 뜻입니다. 227년, 제갈량은 북벌을 앞두고 이 글을 황제에게 올렸습니다. 첫머리부터 솔직합니다. 그는 지금이 위급존망의 때 라고 적었습니다. 나라가 살지 망할지 갈리는 순간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황제에게 스스로를 낮추지 말고, 신하들의 바른말을 막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글의 대부분은 전쟁 계획이 아닙니다. 자신이 떠난 뒤 조정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당부입니다. 후대에는 이 글을 읽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는 말까지 전해집니다. 연도 사건 207년경 삼고초려 223년 유비 사망, 뒷일 부탁 225년 남중 평정 227년 출사표 상주 228년 가정 패배 234년 오장원에서 병사 3. 조직을 묶은 네 가지 장치 출사표에는 오늘날 리더십 원칙과 닮은 장치가 담겨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

[What] 오크섬 지하 구덩이엔 무엇이 묻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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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섬 지하 구덩이엔 무엇이 묻혀 있는가?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230년 동안 사람들이 파고 또 팠습니다. 그런데 아직 아무도 그 바닥을 보지 못했습니다. 1795년 한 소년이 움푹 꺼진 땅을 발견했습니다. 구덩이는 파 들어갈 때마다 바닷물에 잠겼습니다. 1909년 루스벨트도 탐사에 투자했습니다. 지금까지 6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기록됩니다. 보물의 존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1. 1795년, 오크나무 아래의 구덩이 오크섬은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마혼베이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면적은 약 57헥타르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1795년 소년 대니얼 맥기니스가 섬에서 움푹 꺼진 땅을 봤습니다. 그 위의 오크나무 가지에는 도르래 자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와 친구들이 땅을 파자 약 3미터마다 통나무 판 이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이 발견담은 수십 년 뒤에 기록된 것입니다. "일곱 명이 죽어야 보물이 나온다." 섬에 전해지는 말이지만 출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2. 바닷물이 지키는 구덩이 1803년 무렵 온슬로 회사가 본격적인 굴착에 나섰습니다. 약 27미터(90피트) 깊이에서 기호가 새겨진 돌이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구덩이는 바닷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후 거의 모든 탐사대가 같은 침수 에 막혔습니다. 일부는 누군가 일부러 바다와 이어지는 홍수 터널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지질학자들은 석고 지대에 생긴 자연 동굴과 지하수로가 원인이라고 봅니다. 연도 사건 1795 구덩이 발견담 1803 온슬로 회사 굴착 1849 트루로 회사 시추 1909 루스벨트 투자 1965 레스톨 일가 사고 1969 10-X 시추공 3. 대통령도 꿈꾼 보물 1909년 젊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가 올드 골드 샐비지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그는 훗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섬 소식을 챙겼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오크섬은 비극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1965년 8월 탐사자 로버트 레스톨과 아들 등 4명이 갱도 안의 가스로 목숨을 잃...

[When] 괴베클리 테페는 언제 농경보다 앞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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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베클리 테페는 언제 농경보다 앞섰는가?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농사를 짓기 전에 신전부터 세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과서 순서를 뒤집은 언덕 이야기입니다. 축조 시기는 기원전 약 9600년입니다. 지은 사람은 수렵채집인이었습니다. 스톤헨지보다 약 6천 년 앞섭니다. 땅속에 구조물이 최소 20개 더 있습니다. 신전설은 최근 수정되고 있습니다. 1. 배불뚝이 언덕의 정체 괴베클리 테페는 튀르키예 남동부 샨르우르파 근처에 있습니다. 이름은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1963년 조사단은 이곳을 중세 무덤 터 정도로 여기고 지나쳤습니다. 흩어진 석회암 조각은 묘비로 보였습니다. 1994년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 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는 땅에 박힌 돌이 T자 기둥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먼저 신전이 있었고, 그다음 도시가 생겼다." 슈미트가 남긴 해석입니다. 2. 언제 세워졌나, 숫자로 보는 연대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결과, 가장 오래된 층은 기원전 약 9600년 으로 나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1600년 전입니다. 이때는 빙하기가 막 끝난 직후였습니다. 도기도, 금속도, 바퀴도 없던 시대입니다. 유적 연대(기원전) 괴베클리 테페 약 9600년 작물화 밀 확산 약 8500년 이후 스톤헨지 약 3000년 기자 대피라미드 약 2560년 스톤헨지보다 약 6천 년, 대피라미드보다 약 7천 년 앞섭니다. 3. 돌기둥이 말하는 것 기둥은 높이 최대 약 5.5미터 , 무게는 10톤 안팎으로 추정됩니다. 원형 돌담 안에 둥글게 서 있습니다. 기둥에는 여우, 멧돼지, 뱀, 독수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일부 기둥에는 팔과 손, 허리띠가 있어 사람 형상으로 해석됩니다. 근처 채석장에서 돌을 직접 떠냈습니다. 도구는 돌과 뼈뿐이었습니다. 수백 명의 협업이 필요했을 것으로 봅니다. 가장 유명한 43번 기둥은 '독수리 돌'로 불립니다. 이를 혜성 충돌의 기록으로 보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미검증 가설 이며 학...

[Why] 왜 우리는 아직 외계인을 못 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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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아직 외계인을 못 봤는가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별은 수천억 개인데 하늘은 조용합니다. 이 침묵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페르미 역설입니다. 핵심 요약 페르미 역설은 1950년 점심 대화에서 나왔다 드레이크 방정식은 답이 아니라 질문의 목록이다 와우 신호는 한 번뿐이었고 다시 오지 않았다 침묵을 설명하는 가설은 모두 미검증이다 점심시간에 나온 질문 1950년 여름,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식당이었습니다. 동료들과 비행접시 만화 이야기를 나누던 엔리코 페르미가 불쑥 물었습니다. 다들 어디 있는 거지? 이 장면은 페르미가 남긴 논문이 아니라 동료들의 회고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정확한 문장은 기억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질문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우리 은하는 130억 년이 넘었고, 별은 1천억~4천억 개 로 추정됩니다. 어떤 문명이 우리보다 조금만 먼저 시작했어도, 지금쯤 은하 곳곳에 흔적을 남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드레이크 방정식이 말해 주는 것 1961년,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는 그린뱅크 회의를 준비하며 칠판에 식 하나를 적었습니다. 교신 가능한 문명의 수를 따져 보는 식이었습니다. N = R* × fp × ne × fl × fi × fc × L 별이 태어나는 속도, 행성을 가진 별의 비율, 생명이 생길 확률, 문명의 수명이 차례로 곱해집니다. 앞쪽 항목은 케플러 망원경 덕분에 꽤 밝혀졌습니다. 이제는 대부분의 별이 행성을 가진다 고 봅니다. 문제는 뒤쪽 항목입니다. 생명과 지성, 문명의 수명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계산 결과는 1부터 수백만까지 크게 흔들립니다. 한 번뿐이었던 와우 신호 1977년 8월 15일, 오하이오 주립대의 빅이어 전파망원경이 강한 신호를 잡았습니다. 신호는 약 72초 동안 이어졌습니다. 출력물을 보던 제리 이만은 그 옆에 'Wow!'라고 적었습니다. 이후 수십 번 같은 방향을 살폈지만 신호는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연 현상이라는 해석도 나왔지만, 아직 결론은...

[Where] 사라진 5억 달러 명화들은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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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5억 달러 명화들은 어디 있나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Koreaallinfo 1990년 3월 18일 새벽, 보스턴의 한 미술관에서 명화 13점이 사라졌습니다. 걸린 시간은 단 81분이었습니다. 30년이 넘도록 단 한 점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핵심 요약 경찰로 위장한 2인조가 13점을 훔쳤다 추정 피해액은 약 5억 달러에 이른다 현상금 1,000만 달러가 여전히 걸려 있다 빈 액자는 지금도 벽에 걸려 있다 그날 밤, 81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무대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입니다. 베네치아 궁전을 본뜬 우아한 건물이죠.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경찰 제복을 입은 두 남자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소란 신고를 받고 왔다는 말이었습니다. 규정상 열면 안 되는 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간 경비원은 제복을 믿고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두 남자는 곧 경비원 두 명을 결박해 지하실에 가뒀습니다. 그리고 81분 동안 전시실을 돌며 작품을 골라 갔습니다. 일부 그림은 액자에서 칼로 도려냈습니다. 서두른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그들은 새벽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이후 행방은 묘연합니다. 무엇이 사라졌나 도난 목록은 기묘합니다. 세계적 걸작과 비교적 값이 덜 나가는 소품이 뒤섞여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렘브란트의 「갈릴리 바다의 폭풍」 입니다. 그가 남긴 유일한 바다 풍경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 작가 갈릴리 바다의 폭풍 렘브란트 합주 페르메이르 토르토니에서 마네 드로잉 5점 드가 오벨리스크 풍경 플링크 페르메이르의 「합주」는 도난 미술품 가운데 가장 비싼 작품으로 자주 거론됩니다. 현존하는 페르메이르 작품은 30여 점뿐입니다. 여기에 고대 중국 청동 술잔과 나폴레옹 시대 깃발의 독수리 장식까지 포함됐습니다. 전문가의 선택이라 보기엔 어딘가 어설픈 조합입니다. 왜 빈 액자는 아직도 걸려 있나 이 미술관에는 독특한 규칙이 있습니다. 설립자 이사벨라 가드너의 유언에 따라 전시 배치를 바꾸기 어렵습니...

[Who] 바스티유 감옥 철가면은 누구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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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o] 바스티유 감옥 철가면은 누구였나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Koreaallinfo 1703년, 바스티유에서 얼굴을 가린 죄수가 숨을 거뒀습니다. 그는 34년 가까이 이름 없이 갇혀 있었습니다. 핵심 요약 가면은 철이 아닌 검은 벨벳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1669년 편지에 하인 외스타슈 도제가 등장한다 왕의 쌍둥이설은 사료가 없는 전설이다 푸케설과 마티올리설은 사망 기록과 어긋난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비밀을 안 하인이다 1. 철가면은 어떤 죄수였나 1703년 11월 19일, 바스티유 감옥에서 한 죄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 기록에는 마르키올리라는 낯선 이름만 남았습니다. 그는 30년 넘게 얼굴을 가린 채 여러 감옥을 옮겨 다녔습니다. 재판도, 죄명도, 판결문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철가면 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바스티유 부관 뒤 쥔카의 일지에는 검은 벨벳 가면으로 적혀 있습니다. 필요한 것 외의 말을 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하라. (1669년 루부아 지시의 요지) 그는 간수와도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쓰던 가구는 사후에 불태워졌다고 전해집니다. 평범한 죄수라면 결코 받지 않을 통제였습니다. 절대 권력은 왜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숨겼을까요? 2. 기록 속 이름은 누구였나 1669년 7월, 전쟁장관 루부아가 피녜롤 요새의 생마르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죄수 외스타슈 도제가 곧 도착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는 그를 하인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런데도 여러 겹의 문이 달린 독방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붙었습니다. 피녜롤에는 몰락한 재무장관 푸케도 갇혀 있었습니다. 도제는 훗날 푸케의 시중을 들게 됩니다. 1680년 푸케가 죽자 당국은 도제를 더 엄격히 격리했습니다. 그가 무언가를 들었을까 두려워한 듯합니다. 연도 장소 비고 1669 피녜롤 수감 시작 1681 엑질 생마르 전근 1687 생트마르그리트섬 밀폐 가마 이동 1698 바스티유 벨벳 가면 기록 1703 바스티유 사망 생마르는 전근할 때마다...

[Where] 사라진 모세의 언약궤는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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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모세의 언약궤는 어디 있나 ▶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Koreaallinfo 금으로 덮인 성경 속 상자가 약 2,600년 전 사라졌습니다. 약탈 목록에도, 귀환 목록에도 그 이름은 없습니다. 이 글은 네 가지 대표 가설을 사실·전승·가설로 나눠 정리합니다. 핵심 요약 언약궤는 기원전 586년 이후 기록에서 사라졌다 가장 현실적인 설은 바빌로니아 약탈 중 소실이다 느보산·성전산 은닉설은 고대 전승에 근거한다 에티오피아 악숨 소장설은 신앙 전통이며 미확인이다 언약궤란 무엇이었나 언약궤는 출애굽기 25장에 묘사된 성물입니다. 아카시아 나무 상자에 안팎으로 순금을 입혔습니다. 뚜껑 위에는 날개를 편 두 케루빔이 마주 보았습니다. 안에는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이 있었다고 기록됩니다. 항목 내용 재료 아카시아 나무·순금 크기 약 1.1×0.7×0.7m 내용물 십계명 돌판 안치 장소 솔로몬 성전 지성소 궤는 금고리에 채를 꿰어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고 옮겼습니다. 맨손으로 만지는 것은 금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건널 때도, 전쟁에 나설 때도 궤를 앞세웠습니다. 블레셋에 빼앗겼다 돌아온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솔로몬 성전이 완성되자 궤는 가장 안쪽 방인 지성소에 안치됐습니다. 대제사장만 1년에 단 하루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궤가 마지막으로 분명히 언급되는 때는 요시야 왕 시대입니다. 기원전 7세기 후반 의 일입니다. 바빌로니아가 녹였을까 기원전 586년 , 바빌로니아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열왕기하 25장은 약탈품을 자세히 적었습니다. 놋기둥, 받침대, 놋바다, 솥, 대접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가장 귀한 언약궤는 목록에 없습니다. 일부 학자는 궤의 금을 벗겨 녹였기에 따로 적히지 않았다고 봅니다. 가장 현실적인 추정이지만 결정적 증거는 없습니다. 약 50년 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유대인의 귀환을 허락했습니다. 돌아온 성물 목록에도 궤의 이름은 끝내 없었습니다. 에스라서: 돌려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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