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어떻게 에어비앤비는 시리얼을 팔아 살아남았나
1971년 8월 15일 일요일 저녁,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TV 연설로 새로운 경제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내용은 세 가지였습니다. 외국 정부가 가져온 달러를 더는 금으로 바꿔 주지 않고, 90일 동안 임금과 물가를 동결하며, 수입품에 10퍼센트의 추가 관세를 매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닉슨 쇼크라고 불렀습니다.
발표 시점도 계산된 것이었습니다. 일요일에는 미국 금융 시장이 문을 닫습니다. 월요일 아침 시장이 열리기 전에 충격을 미리 던져 투기 세력이 달러를 팔아 치울 틈을 줄이려 한 것입니다. 다음 날 다우지수는 33포인트 올라 당시 기준 하루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1944년 미국 브레턴우즈에 44개국 대표가 모여 전후 통화 질서를 세웠습니다. 각국 화폐는 달러에 고정하고, 달러는 금 1온스당 35달러에 고정한다는 규칙이었습니다. 미국이 세계 공식 금 보유량의 약 4분의 3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약속은 단단해 보였습니다.
| 연도 | 사건 |
|---|---|
| 1944년 | 브레턴우즈 협정, 1온스 35달러 |
| 1965년 | 드골, 달러의 금 교환 선언 |
| 1968년 | 런던 골드풀 붕괴 |
| 1971년 8월 | 금 창구 폐쇄 |
| 1973년 3월 | 주요국 변동환율 전환 |
문제는 구조에 있었습니다. 세계 경제가 커질수록 달러가 더 필요했고, 미국은 군사비와 원조, 베트남 전쟁 비용으로 달러를 해외에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금은 그만큼 늘지 않았습니다. 달러가 많이 풀릴수록 그 달러를 정말 금으로 바꿔 줄 수 있느냐는 의심이 커졌는데, 이 모순을 트리핀 딜레마라고 부릅니다.
1966년 외국 중앙은행 보유 달러: 약 140억 달러
미국이 외국 몫으로 내줄 수 있는 금: 약 32억 달러은행 예금은 넘치는데 금고 속 현금은 모자란, 전형적인 뱅크런 직전의 모습이었습니다.
1965년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 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1971년 5월에는 서독이 고정환율에서 손을 뗐고, 8월 9일에는 스위스도 체계를 떠났습니다. 8월 11일에는 영국이 30억 달러어치의 금을 포트녹스에서 뉴욕 연준으로 옮겨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체계를 함께 만든 영국마저 금을 원한다면, 게임은 끝난 것이었다. — 폴 볼커의 회고 요지
8월 13일부터 사흘간 닉슨은 참모 15명과 캠프 데이비드에서 비밀 회의를 열었고, 재무장관 존 코널리의 조언에 크게 기대어 금 창구를 닫기로 결정했습니다.
1971년 12월 스미스소니언 합의로 금값은 1온스 38달러로 조정됐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73년 2월 달러는 다시 평가절하됐고, 3월에는 주요국이 변동환율로 넘어가며 브레턴우즈 체제는 사실상 끝났습니다.
| 구분 | 내용 |
|---|---|
| 정치적 결과 | 국내 지지 상승, 1972년 재선 압승 |
| 대외 반응 | 일방주의라는 동맹국 비판 |
| 경제적 결과 | 물가 재상승, 1970년대 달러 약세 |
| 장기 영향 | 신뢰 기반의 달러 체제 정착 |
역설적이게도 금을 버린 달러는 그 뒤에도 기축통화 자리를 지켰습니다. 오늘날 달러를 받치는 것은 금이 아니라 미국 경제와 제도에 대한 신뢰입니다.
이 글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교양 콘텐츠이며, 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의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