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롤스로이스 보닛의 여신상은 어디로 숨나
우주비행사 한 명이 발끝부터 블랙홀로 떨어집니다.
몇 초 뒤, 그의 몸은 국수처럼 가늘고 길어집니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을 국수로 만드는 걸까요?
중력은 가까울수록 강해집니다.
거리가 절반이 되면 당기는 힘은 네 배가 됩니다.
발부터 떨어지면 발은 머리보다 블랙홀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발은 머리보다 더 세게 당겨집니다.
이렇게 생기는 힘의 차이를 조석력이라고 부릅니다.
바다의 밀물과 썰물을 만드는 바로 그 힘입니다.
달은 가까운 쪽 바다를 먼 쪽보다 조금 더 세게 당깁니다.
지구 위에 선 우리도 사실 발이 머리보다 조금 더 세게 당겨집니다.
다만 그 차이가 너무 작아서 전혀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블랙홀은 이 작은 차이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키웁니다.
그 차이가 몸이 버틸 수 있는 힘을 넘으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현상의 별명은 스파게티화입니다.
영어로는 스파게티피케이션, 국수 효과라고도 부릅니다.
이 말을 널리 알린 사람은 스티븐 호킹입니다.
그는 1988년 책 시간의 역사에서 이 장면을 소개했습니다.
"발부터 빠진 우주비행사는 스파게티처럼 늘어난다."
이 단어는 1977년 과학 저술가 나이절 콜더의 책에도 등장합니다.
신기한 점은 몸의 부피가 거의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위아래로 늘어난 만큼 옆으로 가늘어지기 때문입니다.
몸의 오른쪽은 왼쪽으로, 왼쪽은 오른쪽으로 밀립니다.
반죽을 길게 늘이는 장면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물론 실제로 이 일을 겪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설명은 중력 이론에 따른 계산입니다.
직관과 반대로 작은 블랙홀일수록 더 위험합니다.
조석력은 거리의 세제곱에 반비례해 커집니다.
작은 블랙홀은 지평선이 중심에 아주 가깝습니다.
그래서 지평선에 닿기 훨씬 전부터 몸이 찢어집니다.
태양 열 배 질량의 블랙홀은 지평선 반지름이 약 30킬로미터입니다.
계산상 위험한 당김은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질량이 클수록 지평선도 비례해서 커집니다.
지평선이 커지면 그 위치의 당김 차이는 오히려 줄어듭니다.
| 구분 | 항성 블랙홀 | 초대질량 블랙홀 |
|---|---|---|
| 질량 | 태양 약 10배 | 태양 수백만 배 이상 |
| 지평선 | 반지름 약 30km | 지름 수천만km 규모 |
| 국수 시점 | 지평선 바깥 | 지평선 안쪽 |
사람은 아니지만, 별이 국수가 되는 장면은 실제로 관측됐습니다.
2019년에 발견된 AT2019qiz라는 섬광입니다.
지구에서 약 2억 1,500만 광년 떨어진 에리다누스자리 은하에서 벌어졌습니다.
태양과 비슷한 질량의 별이 거대 블랙홀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별은 가느다란 줄기로 찢겼고, 질량의 약 절반을 잃었습니다.
블랙홀은 태양보다 100만 배 이상 무거웠습니다.
이런 현상을 조석 파괴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섬광은 약 6개월 동안 밝아졌다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연구진은 그동안 관측을 가려 온 먼지 장막의 정체도 밝혀냈습니다.
| 항목 | 내용 |
|---|---|
| 거리 | 약 2억 1,500만 광년 |
| 별의 질량 | 태양과 비슷 |
| 잃은 질량 | 약 절반 |
| 분출 속도 | 초속 최대 1만km |
한 은하에서 이런 일은 대략 1만~10만 년에 한 번꼴로 추정됩니다.
거대한 블랙홀에서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궁수자리 A별의 지평선에서는 머리와 발의 당김 차이가 아주 작습니다.
계산상 지구 중력의 약 1만분의 1 수준입니다.
그래서 우주비행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지평선을 넘을 수 있습니다.
국수가 되는 순간은 지평선 안쪽,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찾아옵니다.
바깥의 관찰자에게는 더 기묘한 장면이 보입니다.
우주비행사는 지평선 앞에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려 보입니다.
빛은 점점 붉어지고 흐려지다 결국 사라집니다.
작을수록 지평선 밖에서 클수록 지평선 안에서
이 글은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정설에 기반한 계산을 소개합니다.
지평선 안쪽의 실제 모습은 아직 관측되지 않은 이론의 영역입니다.
출처: ESO(2020), NASA·EHT 자료, 호킹(1988).